포스트잇으로 남겨 주세요, 이 문서 제록스 해 주세요. 상표가 동사로 쓰인 사례
"당근으로 처분했어요!", "쿠팡 중입니다!" 21세기에 사용하는 우리의 표현 중 하나입니다. 과거 '제록스 해 주세요'와 같은 표현들이기도 합니다.
상품명, 상표명이 동사 비슷하게 쓰이게 된 것들
2,000년대 이전까지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먼저 개발을 한 제품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팟 터치가 세상을 바꿀 즈음 다행히 스마트폰을 먼저 개발해서 21세기 변화에 뒤쳐 지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그 이전에는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 하다못해 전기포트까지 생필품을 외국에서 먼저 개발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우리가 해야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보다 싸게 좋게 만드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그런 제품들은 부가가치가 크지 않았고, 그나마도 일본에 뒤쳐진 2류, 3류로 취급 받았습니다.
물론 ‘김치 냉장고’, ‘녹즙기’ 같은 제품이 1990년대 한국에서 개발되긴 했지만, 우리의 생활 습관에서 다시 개발된 제품이었기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발명품을 받아 들이는 입장에만 있어서 적절한 한국식 이름을 붙여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글로벌 유행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이는 입장이라 '에어컨'과 같은 일본식 조어가 한국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원래의 상표명이 더 자연스러웠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제록스 해주세요!" (복사 해 주세요)
"팩스 해 주세요!" (팩시밀리로 보내주세요)
"봉고에 오르세요!" (승합차에 오르세요)
보통명사나 동사처럼 쓰이는 상표명
제품의 상표명이 보통명사, 동사처럼 쓰이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에 개념이 없던 제품들입니다. 우리는 그 혁신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전에 있지 않았던 물건 이기에 알고 있던 '얼음'과 모양을 나태는 명사 '보숭이'를 사용한 것입니다.
포스트 잇
붙였다 땠다 할 수 있는 메모지가 나왔습니다. 컴퓨터가 비쌌던 시절, 미대에서도 이런 형태의 투명 테이프를 사용했습니다. 종이 위에 투명 테이프를 붙여 놓고 칼로 테이프를 자르고, 절단 된 부위 근처에 마커로 색칠을 하고 떼어 내던 테이프입니다. 그 종이에 붙였다가 떼어내도 잘 떨어졌던 마킹 테이프를 미대생들은 피스테입이라 불렀습니다. 그냥 선배가 피스테입이라 해서 피스테입이라 불렀습니다만 정확한 명칭은 마스킹 테이프입니다.그러면 붙였다 땠다 할 수 있는 메모지를 뭐라 부르면 좋았을까요? 적정한 이름이 없었습니다. ‘붙임 쪽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하는데 '얼음보숭이' 느낌이 듭니다. 사람들은 포장지에 써 있는 대로 포스트 잇이라 불렀습니다. 3M에서 출시한 상표명이 포스트 잇인데 다른 회사에서 나온 이런 형태의 쪽지들을 포스트잇이라 부릅니다. 영어권에서는 ‘스티키 노트 sticky note (sticky : 끈적거리는)’라 부른다고 하는데, 그렇게 쓰는 외국인을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이 제품은 쓰리엠사(3M)에서 종이를 붙이는 접착제를 만들다 실패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그게 오히려 혁신이 되었고 사람들은 적절한 이름을 붙여 주는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포스트 잇'이 더 편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크레파스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들은 '크레파스'라 하면 가수 배따라기의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노래부터 떠오릅니다. 아빠 세대의 자녀들은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색색 크레파스를 떠 올릴 겁니다.
이 크레용의 정식 명칭은 ‘오일 파스텔’이다. (물론 따지고 들어가면 주로 미대생이 사용하는 오일파스텔이라 이름을 붙은 유성 파스텔이 따로 있습니다.) '크레파스'라는 이름은 1926년 일본의 사쿠라 상회에서 붙인 상표명입니다. '크레파스'는 크레용과 파스텔의 일본식 합성어입니다. 일본식 발음이 어려워 ‘에어컨’, ‘팩시밀리’등과 같이 발음하기 쉽게 만들어낸 이름 중 하나입니다.
스카치 테이프
투명 테이프의 정확한 명칭은 ‘셀로판 테이프(Cellophane tape)’입니다. 역시 3M의 브랜드 명이기도 합니다. (3M에 브랜딩 천재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3M에서 셀로판을 이용해 테이프를 개발하고 이름을 스카치 테이프라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셀로판 테이프’라는 말 대신에 ‘스카치 테이프’라는 일반명사로 사용합니다.샤프
샤프하면 몇년 전 대만으로 넘어간 일본 회사 '샤프'가 떠오릅니다. 그 '샤프'가 우리가 쓰는 '샤프'를 만든 회사입니다. 연필 대신에 쓰는 ‘샤프 펜슬’, 옛날 초등학생(당시에는 국민학생이라 불렀다)들은 수업시간에 볼펜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글씨를 학교에서 배웠던 때라 지우개로 지울 수 없었던 볼펜은 학교에서 사용금지였습니다. 당시 연필은 부러지기 쉬웠고, 칼도 함께 들고 다녀야 해서 대안으로 허용한 것이 ‘샤프’였습니다. 1980년 초 TV에서 샤프심 위에 100원짜리 동전을 올려 놓고 샤프심의 강도를 보여주는 광고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0.5mm 샤프심을 사서 실제로 테스트 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매년 80만 ~ 100만 명 정도가 태어났는데 샤프를 안가지고 있던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참고로 2024년 지금은 연간 30만 명도 안 태어난다.)
샤프는 1913년 미국의 키란이 "에버 샤프(Ever sharp pencil)"라는 이름으로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 시작입니다. 그런데 심이 잘 부러져서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샤프는 1915년 (Sharp 전자 창업자) 하야카와 도쿠지가 눌러서 심을 빼는 연필을 개발하고 상표로 샤프 펜슬(Ever ready sharp pencil)을 출시한 제품입니다. 이게 대박 나면서 '샤프 sharp'라고 부르게 되었고, 샤프가 대 히트를 치자 회사명도 '샤프 Sharp'라고 바꿉니다. 돈을 벌어 전자 제품도 만들고 후일 반도체 제조에도 뛰어듭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이 망하고 적자가 심해져 대만 기업에게 매각되었습니다. 영문명은 메케니컬 펜슬(mechanical pencil)이라는데,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알아듣는 이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딱풀
트롯 가수 이찬원 씨의 노래 제목부터 떠올린다면 공부한지 오래 된 분이라 생각 됩니다. 원래는 고체 풀(Glue stick)이라 불러야 할 것인데 이걸 만든 회사 아모스(Amos)가 이름을 '딱풀'이라고 붙였습니다. 딱, 딱 잘 붙으라고 지은 듯 싶은데, 한번 들으면 안 잊혀집니다. 물론 이걸 입에 바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생각처럼 입술에는 잘 붙지 않아 수다나 말수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봉고
봉고는 기아자동차가 만든 소형 승합차 이름입니다. 아프리카 지금은 몰락한 가봉 대통령 ‘봉고’가 내한 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라고 소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그렇게 믿기로 모두 합의한 것 같습니다. 진실이 어쨌든 우리는 앞뒤 구분이 모호한 막대기 형태의 이 승합차를 ‘봉고’라고 부른다. 원 명칭이 관심도 없고 바꾸어 부를 생각도 없습니다.
에스컬레이터 (Escalator)
역시 임영웅의 '계단말고 엘리베이터'부터 떠 오른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의 명칭은 자동 계단(움직이는 계단)입니다. 미국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만든 자동계단의 상표명이 에스컬레이터 입니다. 엘리베이터를 오티스라 부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분야 마케팅은 성공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동계단의 일반 명사로 에스컬레이터라 부르니 대단한 회사인 건 분명합니다.
부르스타
휴대용 가스 버너,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생삼겹살을 구워먹게 해준 이 신박한 아이템을 우리는 부루스타라 부릅니다. 정확한 명칭은 휴대용 가스 버너, 부루스타라는 명칭은 1980년 일본 후지카에서 출시한 휴대용 가스버너의 상표입니다.
노트북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는 노트북의 원래 명칭은 ‘랩탑’입니다. 무릎위에 올려 놓고 쓸 수 있는 컴퓨터이기에 랩탑이라 불렀습니다. (Lap(무릎) + top(위)) 물론 데스크 탑을 랩탑처럼 쓸 수 있는 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노트북이라는 이름은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 도시바에서 출시한 랩탑 컴퓨터의 상표가 노트북입니다.
바세린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피부관련 만병 통치약 ‘바세린’. 화상에도 상처에도 입술에도 립밤대신 바르기도 합니다. 어떤 의사 유튜버는 바세린만 발라 피부 미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유전을 개발하기 전부터 유명했던 바세린은 유니 레버가 만든 상표명으로 원 명칭은 석유젤리(petroleum jelly)입니다.
초코파이
상당히 많은 제품을 일본으로 부터 소개 받다보니 (정확히는 일본이 수출 상대로 한국을 이용한 것이지만) 일본에서 유래한 명칭이 많습니다. 하지만 초코파이는 오리온이 출시한 상품명입니다. 마시멜로를 초코렛으로 두른 파이형태의 과자를 초코파이라고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1989년 독일장벽의 붕괴할 때도, 1990년대 개혁 개방의 물결이 흘러 넘칠 때도, 2000년 초 개성 공단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제품이 초코파입니다.
오리온에서 상품명을 '오리온 초코파이'로 출원 했다고 합니다. 상표명을 ‘초코파이’로 등록했다면 롯데나 해태에서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못 썼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기에 검게 생긴 초코렛 작은 파이를 모두 초코파이라 붙이면서 오히려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햇반
2023년 마트와 납품을 하니 마니 전쟁을 벌이고 있는 ‘햇반’. 정식 명칭은 즉석 밥입니다. CJ에서 나온 즉석 밥의 브랜드 명이 햇반(1996)입니다. 마트에는 오뚜기, 하림, 동원, 농심 등 여러 회사에서 나온 즉석 밥이 있지만 “햇반 있어요?”라고 묻고, 찾아준 곳에 즉석밥의 포장지가 빨갛던, 노랗던 “햇반”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한가지 즉석 밥에서는 잘 안따지지만, 따져야 하는제품들이 있습니다. 잘못 사가면 엄마에게 맞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구별하고 있는 품목들입니다.
“미원 주셔요!” (미풍 가져가면 혼남)
“다시다 주셔요!” (맛다시 들고가면 죽음)
“퐁퐁 주셔요!” (트리오를 가져가도 되긴 했음)
“맥심커피(스틱) 주셔요!” (맥스웰로 가져가면 다시 가서 바꿔야 했음)
“진로 주셔요!” (소주를 진로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음)
혁신의 브랜드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통 명사, 일반 명사 또는 동사로 활용하는 선물을 줍니다.
혁신의 브랜드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통 명사, 일반 명사 또는 동사로 활용하는 선물을 줍니다.